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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ction

[북리뷰] 이반 일리치의 죽음 - 레프 톨스토이

by 블린* 2023. 5. 22.

#2. Book Review - 이반 일리치의 죽음

시선의 이동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열린책들(2021)

이반 일리치의 삶은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대단히 끔찍한 것이었다. - p23 

그것들은 모두 명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명문가 흉내를 내려고 사들이는 것들이다. 이반 일리치의 새집도 딱 그 수준이라 주목을 끌 만한 점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특별하게만 보였다. - p44

그가 평생토록 지키려 애썼던 <품위>라는 게 고작 그런 것이었다. - p85

이 생명력 없는 업무, 그리고 돈 걱정, 그렇게 보낸 1년, 2년, 그리고 10년, 20년. 언제나 똑같은 삶. 살면 살수록 생명은 사라져 가는 삶. 그래, 나는 산에 올라가고 있다고 상상했지. - p104  

「그래, 모든 게 그게 아니었어.」 그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괜찮아. 할 수 있어, <그것>을 하면 되는 거야. 그런데 <그것>이 대체 뭐지?」 그는 스스로에게 묻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 p118


저들이 불쌍해. 저들이 더 고통받지 않게 해주어야 해. 저들을 해방시켜 주고 나 자신도 이 고통에서 해방되어야 해.... <그런데 죽음은? 죽음은 어디로 갔지?> 그는 그동안 익숙해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죽음은 어디 있지? 무슨 죽음? 두려움은 이제 없었다. 죽음이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 p120   

 

    "죽음에 관해서라면 '단 한권의 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보편적인 찬사를 받아온 소설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다. 톨스토이는, '퀴블러 로스 모델'보다 한참 더 전에, 죽음을 향해 가는 인간 내면의 추이를 섬세하게 보여주었다. 판사 이반은 성공의 절정에서 불치병에 걸리는데,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그동안 자신이 완전히 잘못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 걸음씩 산을 오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한 걸음씩 산을 내려가고 있었던 거야." 어떤 사람은 죽음을 앞두고서만 자신의 삶을 정확하게 인식(평가)할 수 있다는 것. 제 삶의 진실을 처음으로 깨닫고 정확히 3일 뒤에 그는 죽는다. 이것이 죽음이라는 사건의 역설이다. (신형철, 인생의 역사』, 난다(2023) - p153)

 

  신형철 저 인생의 역사에서 소개된 글을 계기로 『이반 일리치의 죽음』까지 읽어보게 되었다. 법률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귀족 가문의 아가씨와 결혼을 하고, 고등 법원 판사가 되어 최상류층의 삶을 살아가던 이반 일리치의 삶은 1882-86년 러시아에서 집필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2023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도 이질감 없이 다가왔다. 소설 속 판사 이반 일리치는 45살에 세상을 떠났는데, 나에게도 이제 멀지 않은 나이이다 보니 공감되는 부분이 더 많았던가 보다. 마음에 와닿는 인용 문구를 고르다 보니 거의 소설 전체를 다 옮겨야 할 판이어서, 아. 정말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구나. 이래서 고전이고 걸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단순하고 평범한 내 삶이 몸서리치게 보잘것 없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왕왕 있다. 내 삶에 대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렇다고 끔찍하다는 생각까지는 차마 하지 않았는데, 이반 일리치의 과거로 돌아가는 플래시백 장면의 강렬한 첫 문장 - 이반 일리치의 삶은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대단히 끔찍한 것이었다. - 을 읽자마자 판사의 선고가 내려진 마냥, 심장이 쿵 한번 내려 앉았다. 이 생명력 없는 업무, 그리고 돈 걱정, 그렇게 보낸 1년, 2년, 그리고 10년, 20년. 언제나 똑같은 삶. 살면 살수록 생명은 사라져 가는 삶. (아... 이거 완전 나야나...)

 

  지금까지 잘못 살아왔음을 깨달았지만,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단 말인가. 이반 일리치는 정답을 찾기 위해 죽음을 향하고 있는 육체적 고통보다 더 큰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그것>이 도대체 뭐지?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지금 주어진 순간을 소중하게 붙잡는 것? 그런거 아닐까?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그리고 죽은 시인의 사회가 최애인 나는 이렇게 지레짐작하며 결론이 기대보다는 신선하지 않다는 생각을 감히 하며 마지막 장을 넘기다가 갑자기 한대 얻어 맞았다. 아들이 불쌍했다. ... 아내도 안쓰러웠다. ...「그래, 이거야!」 그는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이렇게 기쁠 수가! 어? 아? 응...? 이거라고? 그리고 몇 번을 더 읽었다.

 

  와.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이거구나! 그렇구나. 

 

  불쌍함에 대해 묵상을 하다가 초등학교 1~2학년 시절 있었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같은 반 아이가 화장실 갈 타이밍을 놓쳤던지 교실에서 바지에 대변을 보는 실수를 했고, 진동하는 냄새에 온 교실이 웃음 바다가 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이날 저녁 나는 일기장에 그 친구가 불쌍했다. 라고 적었다. 아마도 친구들 앞에서 실수했을 그 친구의 창피하고 부끄럽고 당황했을 마음이 나에게도 와닿아서 그렇게 적었으리라. 아.. 그런데 여기에 진정한 기쁨이 있구나. 타인의 딱한 처지를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 이반 일리치는 갑작스레 죽음을 맞닥뜨리게 된 스스로의 불쌍함에 갇혀있을 때 벗어나지 못했던 괴로움 속에서 타인에게로 시선이 옮겨겨지고서야 비로소 죽음의 끝, 곧 빛을 보게 된다. 

 

  맹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고 했고, 성경에서 긍휼(mercy)은 곧 하나님의 사랑이다. 긍휼이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7)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삶의 끔찍함은 어쩌면 단순하고 평범한 데에 있지 않고, '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시선의 편협함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이 초라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도무지 실체를 알 수 없수 없지만 늘 갈구했던 <그것>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 듯 하다.이렇게 기쁠 수가!이렇게 외칠수 있는 환희의 순간이, 이후 결코 바뀌지 않는 환희의 순간과 함께할 날을 기다리며... 

 

  죽음에 관한 단 한권의 책으로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꼽는다면, 죽음에 관한 단 한편의 시로는 딜런 토마스의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을 꼽고 싶다. 아마도 이 시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바라보던 아들의 관점에 더 가까울 것 같다. 잠잠히 어둠 속으로 쉬이 가지 말고, 꺼져가는 빛을 향해 분노하라는 아들의 기도처럼, 이반 일리치는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에 분노하고 생(生)의 환희를 만나는 순간 역설적으로 죽음을 끝내고, 생을 마감하였다. 

 

https://youtu.be/1mRec3VbH3w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 Dylan Tho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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