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Book Review - 아침 그리고 저녁
마침표
그리고 그는 열기와 냉기가 살갗 위로 고루 퍼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소름이 돋으며 행복한 느낌이 온몸을 훓고 지나 눈물이 되어 솟아 오른다, -p9
그 바보 같은 편지만 쓰지 않았더라도 이토록 비참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는 편지를 썼다, 이렇게 창피할 데가, ... 이제 빨리 잊는게 상책이야, ... 세상일이, 다 그렇지 -p94
내가 자네의 제일 친한 친구여서 나를 이리로 보낸 거라네, 자네를 데려오라고 말이야, 그가 말한다 - p130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 하지만 거대하고 고요하고 잔잔히 떨리며 빛이 나지, 환하기도 해, 하지만 이런 말은 별로 도움이 안 될 걸세, -p132
열기와 냉기, 행복과 눈물, 이 책의 도입부이자 생(生)의 시작은 이렇게 뜨거운 감정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요한네스는 출산의 순간부터 인생의 주요한 장면들을 지나오며 부끄러움과 씁쓸함, 쓸쓸함 그리고 슬픔의 다양한 감정들을 다시금 지나온다
굉장히 특별하지는 않을지라도, 매일의 일상 속에서 내가 맡아서 하는 작은 일들, 예를들면 아들의 손톱 옆 삐죽 나온 거스러미를 잘라주는 일, 매일 커피 내려마시기와 같이 반복되는 나의 일상의 루틴들, 그리고 나의 생업, 나의 가족, 나의 친구들과의 잔잔한 하루 하루가 곧, 보잘것 없지 않은 우리들의 인생이라고 다독여주는 듯 했다
요한네스가 마주했던 다양한 장면들 중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은 요한네스가 꽤나 마음에 들었던 여성에게 편지를 건넸지만 이루어지지 못하자 이불킥하는 장면이었다 왜냐하면 누구나 한번쯤 그런 일이 있지 않은가! 친구 페테르가 요한네스에게 건네는 대답은 이런 사건에 가장 정석인 위로이다, '이제 빨리 잊는게 상책이야, 세상일이, 다 그렇지'
극적인 사건 없이 차분하고 서정적인 전개가 아늑한 느낌이었고, 매우 극적이고 압축적이었던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과도 대비되었다, 마치 20년대 초반 전성기였던 큰 웃음 빅 재미로 안방 극장을 들썩였던 버라이어티 예능에서 이제는 편안하고 일상적인 관찰 예능이 대세로 넘어온 것과 유사한 맥락이랄까
죽음을 마주하는 태도에서도 두 책이 대조적인데, 점점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초조하고 불안해했던 이반 일리치와는 달리 요한네스는 가장 친한 친구를 통해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점도 참 편안하게 다가왔다
이 책의 가장 인상깊은 점은 바로 마침표가 없다는 점이다 문장이 길게 이어질 때는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몰라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렇게 우리의 삶은, 하나의 마침표로 인해 끊어지지 않고 때론 복잡하게 얼기설기 이어져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로 해석되기도 해서 더욱 좋았다
특히 이미 노르웨이 출신 작가라는 것을 스포당하고 읽어서 어쩔 수 없이, 이 책을 읽으며 아름다운 노르웨이의 자연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조지 윈스턴의 December 음반이 생각나서 오랜만에 찾아 들었는데 그만 이제서야 올해 6월 조지 윈스턴이 고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디 하늘에서, 평안하시기를
https://youtu.be/Ci52Iq_IQso?si=MBqegydnESspx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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